아일랜드에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두 권의 아일랜드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제목처럼 아일랜드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그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픈 충동의 파도가 일었다. 제길, 하필 지금은 피서철이기까지 하다. 누군가들은 동해로 삼척으로 여행을 떠나오는데.. 나는 이곳이 집이니.. 피서지가 피서지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다만 좀 평소보다 시끌벅적하고 쫌 차가 많아서 불편한 그런 느낌?!!ㅡㅡ;; 게다가 남들 다~ 가는 휴.가.를 나는 그런 게 없어서 가지를 못하고 있으니, 이 책은 안 그래도 허한 내 마음에 더더더 여행을 하고 싶게끔 선풍기를 틀어줬다. 그러나 작가님에게는 죄송하게도 딱히 아일랜드에 가고픈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작가님이 아일랜드의 구석구석을 맛본 것처럼 나도 내가 가보지 못한 내 나라의 구석구석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한 회사에 2년 이상 머물지 못하는 내가, 이제 슬슬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떠나지를 못한다. 남이 아닌 가족의 회사다. 가족이라는따뜻한 둘레는 때로 가혹한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괜히 죄스럽게 느껴진다. 그동안의 삶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그 마음이 자꾸 자꾸 죄스럽게 느껴지니 일상이 즐겁지가 않고 사소한 일에도 괜히 짜증이 난다. 하루든 일주일이든한달이든.. 정말 어디든지 떠나야만 해소될 것 같은 이 감정, 이 느낌. ㅠ,ㅠ;;; 여행 가이드북 + 에세이 느낌의 이 책의 글들이 그 마음에 완연히 불을 지폈다. ㅎㅎ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한 건, 떠나고는 싶은데.. 떠나고픈 곳이 아일랜드 는 아니라는 거다. 대개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그 책속의 장소에 가고 싶은 욕구가 막막 커지는데 요번에는 희한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작가님이 아일랜드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쓰신 게 있다는 걸 알고서는 그것마저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책을 읽은 후에 내 마음은 어떨런지..ㅎㅎㅎp.65햇빛에 부서지는 듯 경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메리온 광장에서 빠져나왔다. 활기찼던 공원과는 대조적으로 광장 주변은 고요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따라 계속 걸었다. 세계는 18세기에 멈춰버린 듯했다. 더블린은 발 딛는 곳마다 숨 쉬는 박물관이라고, 언젠가 들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p.74전시품 중에서도 이집트에서 발견된 거대한 책의 가죽 표지는 단연 돋보였다. 15세기에 만들어진 가죽 표지는 여전히 빛이 났고, 놀랄 만큼 정교했다.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책을 보는데, 한 관람객이 터뜨린 카메라 플래시에 기분이 상했다. 갤러리를 통틀어 체스터 비티 경이 전하려는 메세지는 동서양 문화의 공존인 동시에 공유의 미덕이다. 옛것의 아름다움을 취했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지키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소유의 확실한 방법은 공유다.p.834층의 기네스 아카데미 에서는 특별한 강의가 진행된다. 직원이 직접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기네스를 따르는 방법 을 알려주는 것. 특별한 방법이란 45도 각도로 잔을 기울여, 로고인 골드 하프에 닿을 때까지 잔을 채운 뒤, 질소가 충분히 섞이게 하기 위해 2분을 그대로 놔둔다. 정확히 2분 후, 잔의 나머지 부분을 마저 채우고 마시는 것이다.p.96아일랜드의 겨울은 잿빛이다. 반짝이는 하늘에 속아 대책 없이 집을 나섰다가는 두고 온 우산이 속절없이 그리워진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반가움이 배가 된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아서, 투명한 오늘 하루가 더욱 감사하다.p.158윌리엄 월리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저항군의 지도자가 되어 잉글랜드와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군은 윌리엄의 죽음에 슬퍼하며 그의 정신을 기려 배넉번 전투에 나가 승리를 거둔다. 월리스는 특별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자유를 외치기 전까지는. 두려움에 떤 그가 용감하게 죽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고는 자유를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죽음을 앞둔 순간, 그의 눈은 어린아이의 맑은 눈망울과 마주쳤다. 월리스는 어린아이의 눈망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p.180입구 주변에 있는 중세의 관과 기념비를 보는 것으로 블랙 수도원을 빠져나왔다. 고귀한 예술작품으로부터, 신실한 종교로부터, 유서 깊은 역사로부터 작별을 고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현재로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마주한 게이트는, 그리고 회색 빛깔의 건물들은 킬케니가 시간이 머무는 도시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p.196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한 대의 비행기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해서, 비행기는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 같았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하얀 파도가 거품처럼 부서졌다. 손에 든 샌드위치는 금세 사라졌지만 나는 한나절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조금 더 게을러져도 좋았다. 훗날 지금 이 순간이 딱딱한 나무 의자가 아니라 싱그러운 잔디로, 부드러운 흙 냄새로 기억되기를. 두 눈에 가득히 하늘을 담았다. p.241절벽에 서면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한다. 가장 먼저 아찔한 두려움이 일었다가, 그 다음으로는 거대한 절벽에 몸을 맡기고픈 죽음의 충동이 든다고 한다. 인생이 고달파서라기보다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다. 분화구처럼 솟아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오는 무한한 경외감 앞에 나는 저절로 겸손해졌다.p.294이 다리는 본래 한 줄로만 이어져 있다고 한다. 어부들은 한 줄만 잡고도 눈 감듯 건넜지만 나는 지금의 두 줄로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한 줄이었으면 나 같은 유리심장은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거다. 건너편의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더니 막상 내 차례가 되자 약간 겁이 났다. 중간쯤 건넜을 때, 바람이 불어 다리가 흔들렸다. 덩달아 내 정신도 흔들,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도 흔들.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라지만, 자연의 숨소리 한 번에 이렇게 겁을 먹는다. 언젠가 읽은 이상호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태풍에도 까치 집은 끄덕 없는데, 인간의 집은 무너져 내린다 는. 그러고도 한사코 과학이라 우기는.
우리와 다른 듯 닮은 작은 섬나라
문학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아일랜드의 매력 속으로

영국 옆에 붙은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이곳에 가려면 우리나라에서 출발해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여전히 생소하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 [원스]를 본 적이 있다면, U2의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면,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은 적이 있다면.

예술가들이 사랑한 아일랜드의 이야기를 담은 [아일랜드에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가 1년간 아일랜드의 구석구석을 밟으며 느낀 단상을 모은 사진 에세이다.

아일랜드는 문학과 예술의 나라답게 어딜 가나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고, 작가들의 흔적이 살아 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이리시의 삶은 소박하면서 잔잔하다. 아픈 역사와 혹독한 경제난을 겪었으나 지금은 리피 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와 다른 듯 닮은 나라이기도 하다. 저자의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아일랜드의 따뜻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2017 김종석 행정법각론

중학 패턴 수학 2-2 (2017년용)